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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쓰기2015.08.20 06:00

어머님 전상서

 

아이들 유치원 끝나고 오는 길가 꽃집에 들러 탐스런 장미꽃 한 송이씩을 샀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께 커다란 축하꽃바구니로 보답해 드려도 모자라는 날이지요.

아는지 모르는지 두 손자는 할머니께 처음으로 예쁜 꽃을 골라 맘에 드는 포장지로 리본까지 매서 드릴 한 송이 꽃 선물이 마냥 좋고 신나는 일인 듯합니다. 아이들 웃음꽃이 더해져 세상 하나뿐인 어머니 꽃다발이 완성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 꽃이 제일 이쁘지. 애고 우리 강아지들.......어디서 왔을 고?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죽기 전에 복사꽃 같은 우리 손자를 하나도 황송 한데 둘씩이나 보게 됐는지 몰라?”

어머니께서 두 손자들을 보시며 늘 하시는 말씀이 스쳐 지나갑니다.

 

어머니께 오늘 우리 셋이서 조그맣게 퇴임식을 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궂은일, 힘드신 일 이제정말 그만 하세요 어머니!

신발 공장에 공사판에 지금 아파트 청소 일에 이르기 까지 조그만 체구의 여인네로서는 너무도 힘든 인생길 이셨습니다. 어머니 연세가 77, 올해 5살인 작은 아이는 유치원 친구 말고 할머니도 같은 돼지띠라며 신기해 했지만 칠순을 넘겨보신 손자와 6바퀴를 돌아 띠 동갑이시니 이젠 손자 재롱보시며 편히 지내세요.

 

시집와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어머니께서 늘 말씀 하셨지요.

 

내 입이 보살이여! 어려서부터 네 서방 면서기만 되라고 노래노래 불렀더니만 거봐라 시청 공무원 됐잖여. 니 자식도 내가 대통령 되라고 계속 말할 참여. 그러다 3년 뒤 밤 1150분에 나 죽으련다. 며느리 보고 3년 안에 초상나면 사람 잘못 들였다고 너 욕 먹일 테니깐 3년 지나서 꼭 밤 1150분에 죽을 거다. 그래야 자식들 하루라도 덜 욕보고 이틀 아닌 이틀 상 치를 거 아니냐? 내가 말하면 정말 그렇게 되더라. 막내까지 장가보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고 단 한 가지 손자를 못 봐서 대를 못이었는데 그건 사람 인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지. 점쟁이가 막내아들이 호랑이띠랑 결혼해서 손자 본다고 했으니 걱정 안한다. 네가 호랑이 띠 잖여! 넌 꼭 아들 날 끼다. 점쟁이 말도 틀림없을 테지만 내가 자꾸 얘기 하면 말이 씨가 되더라고. 너도 자꾸 좋은 말만 입에 담아라.”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3년 뒤에 돌아가신다는 말씀이 씨가 안됐으니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저희가 결혼 한 지 9년째이고 큰 손자가 7, 꿈은 아빠처럼 공무원이라니 공무원 대장(?)되는 일도 머지않은 듯합니다.(요즘은 바둑이 재미있다고 바둑기사가 되겠다 네요. 바둑기사 대통령도 멋지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이 고되셔서 그런 생각을 하시고 사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물둘에 안씨 집안 큰 며느리로 시집와 위로는 시 할머니를 모시며 아래로는 돌아가신 시 부모님들 대신 열일곱 식구를 품에 안으셔야 했으니 그 고단함이야 어찌 말로 할 수 있으시겠어요? 물론 저도 어머니께 말로 천 번, 만 번을 듣는다 해도 가늠할 수조차 없을 거예요.

 

어머니의 기쁨은 물레질해서 죽 널어놓은 모시 삼베를 보며 허리 한번 펴는 일이었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뭐든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는 물레질 뿐 아니고 1년 여덟번 제사음식을 모두 손수 다 만드셔서 지내셨다니 얼마나 바쁜 일상 이셨어요.

어머니이시기전에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 인생이 참 애틋하게 여겨집니다. 진작 편히 모셔야 했는데 죄송한 말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시집와서 어머니께 식혜 만들기부터 간장, 된장, 고추장, 쌈장 담그기, 백설기, 시루떡, 송편, 수수팥떡도 만들어 보았지요. 김장도 사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어요. 정말 많이도 해 보았네요.

처음엔 심부름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저번 명절에는 제가 직접 식혜를 만들어 손님 대접 했던 거 기억하시지요?

어머니께서 칭찬해 주셔서 큰 아이 유치원 생일잔치에도 만들어 보냈잖아요.

아이들한테는 산 음료수가 인기가 더 좋았다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제게 표를 몰아 주셨어요. 체면은 섰으니 정규도 제 정성을 알겠지요.

 

큰 아이 열 살까지 수수팥떡을 해줘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산다며 해주신 생일 떡을 올해로 일곱 번째 받았네요. 그 일이 매년 어머니 낙이려니 하는 핑계로 열심히 배우지 않았었는데 오는 작은 아이 생일에는 제가 어머니 옆에서 직접 만들어 보고 내년부터 아이들 생일 떡은 제가 해야겠어요.

요즘 찰수수는 다 중국산인지 찧어도 찧어도 금방 굳어 버려서 찧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결혼하고 얼마나 힘이 세졌는지는 보셨지요? 수박 한 덩어리 실은 아이 태운 유모차를 번쩍 들어 계단을 오르지 않나, 한쪽으로는 자는 애 안고 다른 손으로는 시장 본 물건에 가방에 주렁주렁 달고 어머님 집 현관에 들어 설 때면 놀라곤 하셨잖아요.

그 옛날 처음 인사 와서 엉덩이 배긴다고 방석 없이는 맨 바닥에 못 앉던 그 며느리가 더 이상은 아니 예요.^^

 

내가 잊어 버려 싸서 큰일이다. 음식에 마늘 넣는 것도 잊어버리고 뭐 가져온다고 베란다 나갔다가도 그냥 오고 시장가서 꼭 사야 하는데 빠트리고 못 사오는 물건도 많고, 아파트 청소하러 가도 놓고 온 것이 있어 꼭대기층서 지하실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른다. 그러다 시간 다 지나가. 전엔 작년 다르고 올 다르더니 요즘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더라.”

 

그래도 지금껏 아들 생일은 잊어도 며느리 생일 잊어버리는 시 어머니는 없다시며 매년 잘 챙겨 주시고 계신걸요.

 

내 소원은 다음 생에도 꼭 여자로 태어나 월급쟁이 막내아들한테 시집가서 서로 사랑하면서 아껴주면서 사는 거다. 명절이면 한복 곱게 빼 입고 큰 집에 명절 쇠러 가는 여자가 젤로 부럽더라. 난 평생 니 시 아버지 벌어 오는 월급 한번 못 받아봤다. 남편 월급 받아 살림만 하는 것도 해보고 싶다. 그 많은 식구들 챙기느라 내 자식 좋은 옷도 한번 못 입혀 보고, 공부를 제대로 시켰나 먹을 것을 제대로 먹였나 너무 한스럽다. 시 할머니 드리느라 맛있는 거 비린 것도 한번 못 먹여 보고....... 나 죽거든 절대 니 시아버지랑 합장 하지 말고 훨훨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넓은데다 뿌려줘라!”

 

어머니! 아버님께서는 이 말씀을 젤로 싫어하시지만 저는 가슴이 저려오곤 합니다.

어머니 막내아들과 결혼해서 매달 20일 이면 여지없이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 가지고 아이들 먹고 싶다는 것, 사고 싶다는 것, 하고 싶다는 것 언제나 해 줄 수 있으면서도 마냥 행복해 하지 못하고 사는 제가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너 보다 내가 더 사랑하실 거라는 손자들, 하루 종일 아니 1년 내내 아니 죽기 전까지 보고 있어도 물리지 않을 것 같은 손자들한테 꽃 받으신 소감이 어떠셔요?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어여쁘고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저도 사랑합니다.

어머니 소원~ 이제부터 제가 말이 씨가 되도록 빌어 드릴께요.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201158일 막내며느리 올림

 

 

어머니는 3년 전에 갑작스런 뇌종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20여일 병원에 계시며 그동안 못 보셨던 일가친척을 맞이하시더니 자식들 고생될까 그렇게 서둘러 가셨습니다.

 

가을바람이 불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장지에서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읽어드렸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세상에 늦는 일이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이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지금 전화하세요. 그리고 말씀하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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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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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요? 이런 글 보면 가끔 그래요. 아침 좋은 글 읽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백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갑니다.

    2015.08.20 07: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장지에 계셨던...어머니의 인생속에 사셨던 모든 분들이 우셨는걸요.
      선생님은 젊으십니다^^ 아직도 글과 삶에서 피가 솟구치고 계시잖아요.

      2015.08.20 07:16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도 어른들이 안 계셔서 잠시 생각에 젖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애증의 관계였는데요..

    그래도 때때로 저를 찾아 오시는게 혈연의 정이다 하는걸
    깨닫습니다

    2015.08.20 08: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군요! 부모이니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저도 아들만 둘이라 다들 큰 일이라는군요. 살뜰한 저 닮은 딸을 낳았어야 하는데...늦어버렸어요.

      2015.08.20 08:40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부모님과 같이 사는지라....
    잘 읽고 갑니다~

    2015.08.20 09: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시군요~^^
      같이 살 때는 잘 모르지요. 아침내내 엄마한테 전화드려도 안 받으시네요. 비소식 들으시고 밭에 나가 일하시고 계시겠지요.
      이젠 친정다녀 오면서 꼬옥 안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려요. 자식에게는 늘 하는 사랑표현이 엄마에게 하려니 처음엔 어색하더라고요. 이젠 할 때마다 가슴벅찬 감동입니다.
      말해 드릴 수 있을 때 들으실 수 있을 때 많이 해드려야겠어요!

      2015.08.20 10:09 신고 [ ADDR : EDIT/ DEL ]
  4. 외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나네요ㅜㅜ 추석에 가면 외할머니가 해주신 송편… 그립습니다

    2015.08.20 15:49 [ ADDR : EDIT/ DEL : REPLY ]
    • 몸은 좀 어때? 부모가 되야 엄마 마음을 알게 돼. 간절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2015.08.20 15:51 신고 [ ADDR : EDIT/ DEL ]
  5. 어머니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감동이지요.
    저도 어머니를 지금도 모시고 살지만 건강하게 사시기만 바랍니다.

    2015.08.20 23: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머니를 모시고 사시는 게 맞는지요?
      어쩜 그 반대가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홀로 계신 아버님을 제가 모시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젠 팔순이 되신 우리 아버님 ...어머니께서 그리 밀어 내시던 아버님은 아직도 저희 걱정에 매일 불안하십니다.
      "자식이 장성해서 결혼까지 하면 다 키운 거 같아 홀가분 할 거 같지? 그게 아니야! 자식은 클 수록 더 근심이 많아진다."

      차타고 다니시는 것도 불안하신 아버님.
      "남들이 너희보다 덜 배우고 덜 똑똑해서 사고나는 거 같냐?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왔는지...뉴스에 아이들 다친 소식이라도 들리면 전화하셔서 손자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하시는 아버님. 절대 베란다 문은 여름에도 닫아 놓으라시는 우리 아버님께선 편안할 날이 없으십니다.

      저희를 모시고 살고 계시니까요.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사시길 바랄께요~^^

      2015.08.21 03:17 신고 [ ADDR : EDIT/ DEL ]
  6. 좋은 글입니다. 귀한 마음이 전해지네요. 순수샘 참 이쁘오~

    2015.08.25 19: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