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2015.09.09 06:00

우리 아들 정규에게는 여러 가지 모양의 빈 상자와 남편이 읽고 난 경제신문, 제가 보고난 00일보가 최고의 장난감입니다.

 

작게는 제 화장품, 치약 곽에서부터 크게는 동생 현규 기저귀 상자, 각종 택배상자에 이르기까지 집에 들어온 상자는 절대 버리지 않고 장난감 방에 모셔두지요.

 

빈 상자 놀이 1단계에선 상자에 들어가 놀다가 뒤집어쓰기도 하고, 동생 현규를 태워 끌고 다니기도 합니다. 높다란 피사의 사탑도 쌓았다가 그 뒤에서 한참을 꼼짝 않고 숨죽이기도 합니다. 현규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하기 일수이지요.

 

업그레이드 2단계에선 친구 누렁이인형 집을 지어 주더군요(‘강아지라는 동화책을 읽고 난 후였어요). 아기돼지 집(돼지저금통)을 지을 땐 꽤나 심혈을 기울였어요. 늑대 입김에 날아가면 안 된다면서(‘아기돼지 삼형제를 읽었던 것이지요).

 

상자가 장난감이 된 것은 그것을 잘라 한글 공부 카드를 만들어 집안 곳곳에 붙이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냉장고, 텔레비전, 전기밥솥, 거실, 전등, 스위치, 창문, 유리, 화장실, 안방, 액자, 사진......... 이름표도 만들어 달아줬더니만 재미있었나 봅니다.

 

신문지는 색종이 대신 종이접기를 해주었지요. 비행기 접기부터 배, , 개구리 등. 그 중에 딱지 접어 따먹기가 젤로 신이 난 놀이지요. 누가누가 강한 딱지를 만드나 시합도 합니다. 역시 두껍게 만들어야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요령도 생겼습니다. 일단 뒤집어진 딱지는 가장자리를 공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 조절도 중요합니다. 무조건 세게 치면 딱지는 요지부동이고 이튿날 팔만 아픕니다.

 

이것이 1단계였다면 2단계에서는 내용에 관심을 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오늘의 날씨면 이었지요. 새로 산 우산과 장화를 신고 어린이집에 가서 한껏 뽐내야 했으니까요. 그 다음이 월요일마다 오는 맛있는 공부섹션 면이지요. 어린이 신문이라며 아빠 옆에 나란히 앉아 제법 같은 표정과 폼으로 읽더군요. 월요일마다 맛있게한주를 시작하고 있답니다. 물론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읽어도 다 읽지 못한답니다.

 

요즘엔 신문에 실린 한자공부를 오려내서 모으고 있지요. 어린이집에서 노래로 배우는 한자를 하고 있는 덕에 관심이 생겼지요.

 

처음엔 재활용 장난감으로 공부도 하고 신나게, 재밌게, 기발하게 놀 수 있는 정규가 대견해 칭찬도 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왔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상자와 그 속에 둥지를 튼 신문지들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방 하나가 쓰레기장, 아니 고물상으로 변해가더군요. 정규가 어린이집 간 사이 표 안날정도로 정리해 버리다 들켜 울리기 일 수였지요. 나름 정리방식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꾀를 냈지요. 우선 은행에 가서 정규 이름으로 신난다 후토스 어린이 통장을 만들어 줬어요.

 

이제 여기다 정규가 용돈을 벌어서 저금하자. 그럼 이자라는 새끼도 생겨. 집에 있는 돼지저금통은 새끼를 못 낳잖아!”

 

그래서 생겨난 용돈벌기 프로젝트!!

 

매일아침에 일어나 (어느새 5개월째 접어들었네요) 하는 일이 아빠가 일어나시기 전에 신문을 가져오는 일이지요. 60개월 평생(?)동안 한 번도 늦잠이라는 걸 모른 채 저녁 8시쯤 잠들어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정규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지요. 오히려 거는 잠금장치 여는 일이 더 어려웠어요. 키가 닿을랑 말랑. 까치발을 힘껏 들어 여러 번 시도해야 겨우 한번 성공입니다.

 

오늘 온 신문은 아빠 머리맡에 가져다 놓고 어제 보신 신문은 정리해서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어요. 그 신문뭉치와 그동안 정규가 모아둔 상자들을 모두 고물상에 팔기로 했지요. 엄마가 많이 가져가야 돈도 더 벌수 있다고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처음 정규 손에 쥔 거금 5400!! 신이 났습니다.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선 나도 나도 하며 따라 다니는 현규에게 천원을 주더군요.

 

정규야 그 돈으로 뭐 할래? 원래 처음 돈 벌면 엄마 아빠 빨간 내복 사주는 건데?”

“......”

 

그러고서 집에 온 정규가 저에게 봉투 3장을 달라더군요. 가지고 자기 방에 가더니 한참 후에 가져온 봉투 겉면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라고 봉투가 작아 보일만큼 커다랗게 글씨가 씌여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1000원씩 넣어 있었습니다.

 

이번 달엔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 용돈 드릴래요!”

어머나~~~우리 아들이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어?”

 

저와 남편은 놀라워하며 맘껏 칭찬해 주었습니다. 결혼하고 매달 5년 동안 제가 부모님 용돈 드리는 모습을 정규가 봐온 결실입니다.

 

어머님은 흡족해 하시며 실에 매달아 벽에 한 달은 걸어 두셨다가 정규가 젤로 좋아하는 김을 사서 손수 들기름 발라 구워 주셨고, 아버님은 아직도 어디에 쓰셔야 하실지 모르신다며 서랍장에 넣어 두셨습니다, 정규가 올 때마다 꺼내 보이며 자랑을 하고 계십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색깔 다른 돈으로 바로 되갚으시더군요.

 

지금도 신문을 열심히 모으고 있는 정규에게 제가 더 많은 용돈 벌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남편이 중1부터 고1까지 했다는 신문 돌리기에 대해서....... 용돈을 더 벌수 있다는 말에 정규 두 눈은 휘둥그레 커졌습니다. 가만있어도 큰 귀가 쫑긋해지니 얼굴을 덮었습니다. 자기도 아빠처럼 할 수 있다는 군요. 제가 용돈 받을 날도 머지않았나 봅니다.

 

2010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용돈을 드리고 있습니다. 일주일 용돈에서 5%를 떼어 따로 담아 놓았다가 추석과 설날에 말입니다. 2000원 정도니 100%인상도 되었답니다.

 

 

*그때 사진을 못 찾아서 비슷한 시기 사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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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