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2015.08.11 06:22

아파트 게시판에 ! 취업의 꿈!’ 공고를 보고 방과 후 수학 지도사 & 자기주도 학습 코칭 전문 강사 과정을 지원하기위해 이력서를 들고 충남대 새로 일하기 센터에 들어선 것이 20124월 이었지요!

 

 

 

 

이미지 출처 : 데일리메디 2009.02.06

 

경력단절여성(무슨 경력의 단절일까? 난 계속 열심히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었는데....... 남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서 내 애로 바뀌었을 뿐인데.......어쩜 머리만 컸던 직업인에서 이웃 아이까지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 성장 했을 텐데.......) 직업훈련과정을 거친 후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학교인력채용공고를 보고 정식으로 이력서를 처음 낸 곳에 덜컥 합격통지를 받았어요.

 

 지금의 결과는 사소한 차이 & 작은 변화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시작일 뿐입니다.

100+1=101??

100+1=1000!

 

저는 과학도이고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무임승차로 인생의 40줄에 들어선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감히 이 등식이 맞다고 자신합니다.

시간마법(정 선혜, 서 영우 共著)에서는 단지 10분의 투자가 10년 후 내 모습을 바꾼다고 했고, 아웃라이어(말콤 글래드웰 )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1만 시간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제가 집 밖을 나가기 시작한 것은 둘째아이가 다섯 살 되면서 유치원에 다니고부터였어요.

남편이 제 이름의 통장(그땐 생활비도 남편 명의 월급통장 이었고, 연말정산이 복잡하다는 이유와 내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신용카드조차 쉽게 만들지 못했어요!)을 하나 따로 만들어 매달 10만원씩 보낼 테니 제 용돈으로 쓰라더군요. 잔액은 회수되니 꼭 저를 위한 일에 써야 한다나요? 처음엔 좋아라 했지만 내리 세 달을 돌려줘야 했어요. 왜였을까요?

 

제 인생 3(‘열정은 나를 춤추게 한다’ -이 정숙 - )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되었어요.

 

제겐 너무 어려운 숙제더군요! ‘10만원이 마음의 짐으로 다가왔어요!

아이들 유치원 데려다 주고 운동 삼아 뒷산(대전 둘레길 12구간 - 쟁기봉, 장안봉)1시간씩 오르는 일도 돈이 안 들고(등산복이라도 장만 하면 되었을 텐데 동네 산 가는데 그 흔한 골빙? 내파? 도스페이스? 패션은 사치스럽더군요), 마을 도서관, 갈마 이동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일도 공짜였어요.(제 책을 열심히 골라 계산대까지 가져갔다가도 아이들 책 하나 더 사줘야지 싶어 슬며시 내려놓게 되더군요)

 

7년을 가족에 날 포함시켜 함께, 같이, 우리로 살았는데 나만 알밤 바르듯 쏙 빼내 나 만을 위한 소비가 어려웠다면 우습나요?

 

가까스로 찾은 일은 가까운 도서관, 복지관, 구청, 시청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강좌(행복 심리학, 구연동화, 독서치료, 어머니 독서회, 부모교육 등)를 들으러 다니는 일이었어요. 재료비만 조금 내거나 무료 강의였지만 집안의 여자가 집밖으로 나가려니 필요한 것이 하나, 둘 생기더군요. 베이비 로션 대신 기초화장품과 썬 크림이 화장대에 올려놔지고 기저귀 가방대신 휴대폰과 지갑만 들어가는 자그마한 백이 어깨위에 슬쩍 얹어졌어요.

 

일명 품위라는 것이 생기니 유지라는 부담이 따라 오더군요^^ (그동안은 아이들 빛에 가려진 그림자였으니까요!)

 

행복심리학강의에서 대전과학기술대 심리학 교수님께서는 한 달 동안 끝없이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라고 하시더군요.

 

                      

이미지 출처 : 단월드 휴식공간

 

나는 누구인가?’

 

행복의 시작은 남편도 아이도 아닌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차고도 넘쳐야 남편에게 아이에게 내 주변에게 퍼져 행복해진다

.......

 

일주일에 한번 세 달 동안 서구 어린이 도서관에서 이루어진 강의였는데 그 답을 찾지 못하던 어느 날 신문기사 중에 행복을 기다리지 마세요! 지금 알아차리면 됩니다.’ 라는 제목의 성철스님 글을 읽었지요. 그 마지막 글귀에 나는 누구인가?’의 답이 어렵다면 남에게서 나를 발견해도

된다더군요.

 

그래서 찾은 일이 배움의 시기를 놓쳤거나 학교 적응을 못해 그만 둔 1080세대(10대에서 80대까지) 학생들에게 검정고시를 준비해 주는 무지개학교라는 곳이었어요.

20114월부터 12월까지 일주일에 한번, 아침 9~오후1시까지 과학수업을 담당 했어요.

이 일이 제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어요.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건물을 임대해 주셨던 후원자께서 사업이 어려워져 폐교되면서 그만두었지요)

 

다음해 2에 사이버로 독서 논술 지도사 자격을 취득하고, 5~6월에 방과 후 수학 지도사 & 자기주도 학습 코칭 전문 강사, 8월까지 WISET(대전충남 과학기술인 지원센터)에서 아동과학실험지도사과정 이론, 실습을 이수하고 Science Communicator자격증을 거머쥐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가는 몸살 이었던 거 같아요. 한시도 쉼 없이 뭔가를 이

루려고 했어요.

 

제가 첫 번째 학교로 00중에 이력서를 마감 시간에 겨우 낸 데는 남편 말이 크게 작용했어요.

인턴교사를 하려고 결정했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낼 수 있는 곳은 다 내야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피하면 될 일도 안 되지 않겠냐?”

맞는 말이더군요. 집 가까운 초등학교 이면서 교원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 곳을 찾다보니 이력

서 낼 곳이 많지가 않았거든요.

 

스스로 한계를 정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말 듣고 바로 5곳 학교에 이력서와 관련 서류를 준비했어요.

바로 다음날이 00중 기초학력부진학생 수학인턴교사 접수 마지막 날이었고요.

 

큰 아이 학교 옆 여성의 집’(사랑의 열매 후원)에서 제가 과학으로 만드는 장난감방학특강을 재능봉사하고 있었기에 수업마치고 바로 00중에 찾아간 시간이 4시 마감시간이었어요.

가까스로 서류접수하고 넉넉한 웃음을 머금고 계시는 남자 분(나중에 보니 교감선생님이셨죠^^)께서 차 한 잔을 권하시더군요. 30분 동안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게 1차 면접인 줄은 전혀 모르고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작은아이 데리러 가야하는 430분이 가까워지자 바늘방석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좋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인연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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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순주